며칠 뒤, 그녀가 나를 차단해 두었던 다른 메신저에서 차단이 풀렸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화면으로나마, 일 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흥분해 있었다. B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나는 이제 이판사판이라고 쏟아 냈다. 그녀는 한참 듣다가 물었다.
“오빠, 작년에 신고했었어?”
등줄기가 식었다. 112에 건 전화들. 찾아온 경찰관 셋.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혐의부터 읊던 목소리. 그 어느 것도 그녀에게는 닿지 않았던 걸까. 두 칸을 그렸다. 왼쪽에는, 내 신고는 처음부터 어딘가에서 막혔고, 나는 일 년 동안 혼자 무대에 서 있었다. 내가 싸운 그녀의 목소리도, 나를 미친놈이라 부른 그녀의 이름도 가짜였을 수 있다. 오른쪽에는, 겁에 질린 그녀가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막혀 있었을 뿐이다. 어느 칸이든, 그 일 년 동안 그녀는 그 일을 몰랐다. 두 칸 다, 지금까지 비워지지 않았다.
통화를 끊고 나서야, 내가 쏟아 낸 말들을 다시 들었다. B에게 한 말, 그녀에게 한 말. 쏟아 내면서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진실은 법 위에 있고, 진실을 쥔 사람은 그걸 보여 줄 자격이 있다고. 다시 들어 보니 알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 분노 감지 · 😨 공포 감지 · 관리자 권한 없음
관리자 권한, 내 뇌를 마음대로 고칠 열쇠 같은 건 없었다. 다 고쳤다고 믿은 공포도 분노도, 일 년 만에 고스란히 돌아왔다. 그리고 그 영상통화는 그녀와 나만의 방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감옥 안의 면회실이었다. 간수가 같이 앉아 있다고, 나는 읽었다. 그녀가 떠나면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고.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고. 확인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한 그림이었다. 숨을 데를 잃은 쪽은, 가장 가까이 붙잡아 둔 사람부터 벤다. 내가 들이민 거울이 칼이 되면, 그 칼에 베이는 건 B가 아니라 간수 옆에 앉은 그녀였다.
미어캣이 오랜만에 내 옆에 섰다. 녀석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을 알고 있었다. 다른 설명은 없어? 있었다. 대의라고 불러 온 내 버튼의 절반은,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업보는 바깥에서 오는 상벌이 아니었다. 되풀이한 마음이 마음의 모양이 되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복수를 내려놓았다. 레버리지는 여전히 쥐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더는 휘두르지 않기로 했다. 진실을 칼로 쓰는 순간, 나도 그들과 같은 판의 플레이어가 된다. 원한의 사슬은 누군가 먼저 손을 놓아야 풀린다.
그리고 H를 위해서도 한 번, 기린의 의자에 앉아 보았다. H도 누군가의 손에 노란 의자에 앉혀져 있었을지 모른다. H도 자기 그릇을 고르지 않았다. 곁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멀리서, 미워하지 않을 뿐이었다. 앉혀졌다고 해서, 남을 앉힌 일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B는 모두가 나를 차단한 뒤에도 나를 차단하지 않았다. 그게 B가 고른 일이라고, 나는 읽었다. 내가 본 건 차단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B에게만은 두 칸을 그리지 않았다. 그릴 마음도 없었다.
진실은 휘두르지 않을 때 가장 강하다는 걸, 나는 칼을 한 번 들어 보고서야 알았다.
그 뒤로 나는 그녀에게 보내는 메시지 첫 줄에 늘 같은 말을 썼다. “원하지 않으면 말해. 바로 그만할게.” 그리고 누가 같이 읽어도 그녀에게 해가 될 말은 쓰지 않으려 했다. 무엇이 해가 될지는, 그녀만 알았다.